유화웅
시인, 수필가
예닮글로벌학교장
중국의 태산(1535m)은 중국인들에게는 성산(聖山)의 개념으로 진시황이 천하통일을 하고 태산에 올라온 것을 비롯하여 한무제, 광무제, 당고종, 당현종, 강희제, 건륭제 등이 올라와 이곳에 단을 쌓고 하늘에 제사를 드린 봉선(封禪) 의식을 치른 연고로 중국인이 태산을 떠 받들고 있습니다.
오래전 산동성 사범대학에서 세미나를 마치고 태산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케이블카를 이용해서 쉽게 정상까지 갔습니다. 케이블카를 타고 태산을 둘러 보기도하고, 내려다보기도 하며 옛 시인, 묵객들이 감탄하며 작품으로 남긴 뜻을 헤아려 보았습니다. 그런데 케이블카 아래로 보이는 계곡에 난 좁은 길에 띄엄띄엄 사람이 보였는데 이들은 어깨에 멘 장대 양쪽 끝에 물건을 매달고 정상을 향해 힘든 걸음을 하고 있었습니다.
산 아래서부터 50kg이나 되는 짐을 어깨에 메고 생계를 위하여 태산의 정상까지 하루에 여러차례 오르내린다고 합니다. 이들을 보며 인간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 생각도 하며 그들이 극한상황을 일상화하며 삶을 살아가는 모습에 할 말을 잊게 했습니다.
이보다 더한 짐꾼 얘기가 TV에 방영된 설악산의 지게꾼 임기종씨가 그 주인공 입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예전에는 60여명의 지게꾼이 있었는데 민간휴게소 등이 생기면서 하나 둘 떠나가고 지금은 자기 혼자 남았다고 하여 설악산 마지막 지게꾼이라 하였습니다.
그는 16살때부터 66세인 지금까지 50년간 설악산 흔들바위 계조암, 비룡폭포, 비선대, 대청봉(1708m)까지 오르내리는데 건강한 사람도 맨몸으로 힘들게 오르는 길을 한결같이 기본으로 40~50kg을 져서 나르고 많게는 120kg, 130kg되는 냉장고도 지게에 지고 운반했다고 합니다. 상상이 가지 않는 초인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지게꾼을 내 천직이고 설악산은 영원한 친구라고 자랑스럽게 말하였습니다.
더구나 안타까운 것은 부인이 2급장애인이고 아들도 장애가 있다고 했습니다.
임기종씨는 열살이 갓 넘었을 때 부모님을 모두 여의고 자기 한몸 하나 살기도 어렵게 살면서 지게를 지기 시작했고 그것이 평생의 직업이 되었다고 합니다.
어느날 지게꾼 선배가 정신지체장애 2급에다 걸음걸이도 불편한 여성을 소개해주면서 '이런 여자는 자네와 살림을 살아도 결코 도망가지 않을 것'이라고 하며 부인으로 맞아들이라고 해서 임씨는 이런 여자를 소개해 준 것은 내가 별볼일 없어서 그랬겠지만, 그녀를 보는 순간 정말 애처로운 마음이 들면서, 저런 몸이 그동안 주위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구박을 받았을까 싶어 따지지 않고 아내로 맞아들였는데 지능이 7살 정도이고 정상적인 대화가 많이 힘들다고 합니다. 이들 사이에 아들을 낳았는데 아들은 아내보다 더 심한 장애를 갖고 태어나 집에서 양육하기가 어려워 시설에 맡겼다고 합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지금까지 틈틈이 모은 돈으로 소외된 이웃과 학교 그리고 장애시설 등에 2억여원을 기부해서 세상에 큰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설악산 말고는 다른 산에 가본 적이 없이 오직 설악산을 사랑해 설악산에 드나드는 이들을 위해 50년간 적게는 하루 4번 많게는 12번씩 지게 배달을 한 위인을 보며, 정부기관이나 지자체에서 동상을 세워주든가 아니면 그의 이름을 딴 산길을 정해주었으면 합니다.
각 지자체에서 마케팅전략으로 인기배우나 인기 가수들의 이름을 딴 거리 등을 정했다가 나중에 인기인에게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 거리 이름을 취소하는 해프닝이 일어난 사례도 있는 것에 비해 임기종씨는 그의 행적 하나하나 흠이 없고 인간적으로 존경받을 이 시대의 큰 어른이라 하겠습니다.
등산로 중 하나에 '임기종의 길'이라고 정하여 설악산을 오르내리는 이들에게 그를 기억하고 그의 아름답고 훌륭한 정신을 기렸으면 합니다.
임기종씨를 기리며 윤동주선생의 '새로운 길'을 옮겨 봅니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
어제도 가고 오늘고 갈 / 나의 길 새로운 길 //
민들레가 되고 까치가 날고 /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 오늘도· · · · ·, 내일도· · · · · //
내를 건너서 숲으로 /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
유화웅
시인, 수필가
예닮글로벌학교장
중국의 태산(1535m)은 중국인들에게는 성산(聖山)의 개념으로 진시황이 천하통일을 하고 태산에 올라온 것을 비롯하여 한무제, 광무제, 당고종, 당현종, 강희제, 건륭제 등이 올라와 이곳에 단을 쌓고 하늘에 제사를 드린 봉선(封禪) 의식을 치른 연고로 중국인이 태산을 떠 받들고 있습니다.
오래전 산동성 사범대학에서 세미나를 마치고 태산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케이블카를 이용해서 쉽게 정상까지 갔습니다. 케이블카를 타고 태산을 둘러 보기도하고, 내려다보기도 하며 옛 시인, 묵객들이 감탄하며 작품으로 남긴 뜻을 헤아려 보았습니다. 그런데 케이블카 아래로 보이는 계곡에 난 좁은 길에 띄엄띄엄 사람이 보였는데 이들은 어깨에 멘 장대 양쪽 끝에 물건을 매달고 정상을 향해 힘든 걸음을 하고 있었습니다.
산 아래서부터 50kg이나 되는 짐을 어깨에 메고 생계를 위하여 태산의 정상까지 하루에 여러차례 오르내린다고 합니다. 이들을 보며 인간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 생각도 하며 그들이 극한상황을 일상화하며 삶을 살아가는 모습에 할 말을 잊게 했습니다.
이보다 더한 짐꾼 얘기가 TV에 방영된 설악산의 지게꾼 임기종씨가 그 주인공 입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예전에는 60여명의 지게꾼이 있었는데 민간휴게소 등이 생기면서 하나 둘 떠나가고 지금은 자기 혼자 남았다고 하여 설악산 마지막 지게꾼이라 하였습니다.
그는 16살때부터 66세인 지금까지 50년간 설악산 흔들바위 계조암, 비룡폭포, 비선대, 대청봉(1708m)까지 오르내리는데 건강한 사람도 맨몸으로 힘들게 오르는 길을 한결같이 기본으로 40~50kg을 져서 나르고 많게는 120kg, 130kg되는 냉장고도 지게에 지고 운반했다고 합니다. 상상이 가지 않는 초인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지게꾼을 내 천직이고 설악산은 영원한 친구라고 자랑스럽게 말하였습니다.
더구나 안타까운 것은 부인이 2급장애인이고 아들도 장애가 있다고 했습니다.
임기종씨는 열살이 갓 넘었을 때 부모님을 모두 여의고 자기 한몸 하나 살기도 어렵게 살면서 지게를 지기 시작했고 그것이 평생의 직업이 되었다고 합니다.
어느날 지게꾼 선배가 정신지체장애 2급에다 걸음걸이도 불편한 여성을 소개해주면서 '이런 여자는 자네와 살림을 살아도 결코 도망가지 않을 것'이라고 하며 부인으로 맞아들이라고 해서 임씨는 이런 여자를 소개해 준 것은 내가 별볼일 없어서 그랬겠지만, 그녀를 보는 순간 정말 애처로운 마음이 들면서, 저런 몸이 그동안 주위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구박을 받았을까 싶어 따지지 않고 아내로 맞아들였는데 지능이 7살 정도이고 정상적인 대화가 많이 힘들다고 합니다. 이들 사이에 아들을 낳았는데 아들은 아내보다 더 심한 장애를 갖고 태어나 집에서 양육하기가 어려워 시설에 맡겼다고 합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지금까지 틈틈이 모은 돈으로 소외된 이웃과 학교 그리고 장애시설 등에 2억여원을 기부해서 세상에 큰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설악산 말고는 다른 산에 가본 적이 없이 오직 설악산을 사랑해 설악산에 드나드는 이들을 위해 50년간 적게는 하루 4번 많게는 12번씩 지게 배달을 한 위인을 보며, 정부기관이나 지자체에서 동상을 세워주든가 아니면 그의 이름을 딴 산길을 정해주었으면 합니다.
각 지자체에서 마케팅전략으로 인기배우나 인기 가수들의 이름을 딴 거리 등을 정했다가 나중에 인기인에게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 거리 이름을 취소하는 해프닝이 일어난 사례도 있는 것에 비해 임기종씨는 그의 행적 하나하나 흠이 없고 인간적으로 존경받을 이 시대의 큰 어른이라 하겠습니다.
등산로 중 하나에 '임기종의 길'이라고 정하여 설악산을 오르내리는 이들에게 그를 기억하고 그의 아름답고 훌륭한 정신을 기렸으면 합니다.
임기종씨를 기리며 윤동주선생의 '새로운 길'을 옮겨 봅니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
어제도 가고 오늘고 갈 / 나의 길 새로운 길 //
민들레가 되고 까치가 날고 /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 오늘도· · · · ·, 내일도· · · · · //
내를 건너서 숲으로 /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