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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 쪽 발은 무덤을 딛고 나는 서 있노라
이름
유화웅
등록일
2020-05-26

‘한 쪽 발은 무덤을 딛고 나는 서 있노라’는 음악의 아버지라고 하는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J.S. Bach 1685-1750)의 교회 칸타타 작품 156번에 붙여진 곡명입니다.

오래 전 모 방송사에서 방영된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를 통해 대중에게 잘 알려진 곡입니다.

이 곡은 예배용으로 작곡된 곡입니다. 제목에서 암시하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 인간이 겪는 고통과 슬픔을 맡기며 삶에서 죽음을 느끼는 인간으로 낮아진 마음가짐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흐 자신도 인간으로 특히 남편과 아버지로 남이 겪기 어려운 고통을 겪은 내용이 신앙인으로써 예배용 칸타타로 작곡하여 승화시켰다고 하겠습니다.

어려서 양친을 잃은 충격과 슬픔을 안고 자란 그는 22살에 마리아 바르바를 아내로 맞아 4명의 아이들을 낳았는데 아내가 먼저 세상을 뜨는 슬픔을 당했습니다. 그 후 안나 막달레나를 부인으로 맞아 행복한 것도 잠시 첫째 아이가 세살 때, 둘째는 태어난 지 3일만에, 셋째 아이도 세살 때 세상을 뜨는 엄청난 슬픔 속에서 이 곡이 탄생되었다고 하겠습니다.

바흐에게는 한 발이 무덤을 밟고 서 있다는 것이 추상적 상상에 의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바흐의 음악에서 느끼는 선율의 감동보다 제목이 더 마음속에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하루를 산다는 것은 하루를 죽은 것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삶과 죽음은 항상 같은 선상에 놓여 있다는 것이지요.
삶이 어떤 것인지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것과 같이 죽음 또한 단순하게 다루어지는 문제가 아니므로 철학에서, 종교에서 끊임없이 연구하고 설파하고 있지만 그 답을 구하는 것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 계속되고 있을 뿐입니다.

삶이 중요하듯, 죽음의 가치 또한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삶 속에 죽음이 있다는 것을 느끼며 사는 사람은 삶의 방식이 달라진다고 하겠습니다.

그런 사람의 삶은 한 마디로 남을 인정하는 수준에서 더 높은 남을 나처럼 여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유교에서는 그것을 인(仁)이라고 하였고, 기독교에서는 이웃 사랑이라고 가르치고, 불교에서는 자비(慈悲)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가치 있는 삶을 알면서도 좀처럼 실천하기가 어렵습니다. 남을 인정하고 남을 사랑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는 것을 현실에서 느끼고 부딪히고 있습니다.

남을 인정하는 것은 차치(且置)하고라도 이제는 헐뜯고 모함하고 공격하는 것이 사회의 일반적인 현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TV나, Youtube, SNS, 신문 등 다양한 매체의 광장을 통해 국민을 선동하고 언어를 흉기로 사용하여 무차별 공격으로 땅이 지진에 흔들리듯 국민 의식을 혼란스럽고 혼돈의 상태로 만들고 있습니다. 배운 사람과 각종 권력을 누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더욱 지능적이고 교활한 말로 억울한 누명을 만들어 씌우고 인격을 갈기갈기 찢어내며 짓밟아 대는 현실을 봅니다. 또 그들은 자기편은 불의하고 악한 것도 감싸고 보호하며, 상대방을 적대세력으로 몰아 정의와 선한 것까지도 불의하게 만들고, 악하게 포장을 해서 대중들을 속이기도 합니다. 서로 교통하기 위해 다리를 놓기보다 자기 진영의 성을 쌓아 놓고 다른 진영에 대해 무자비하고 잔인할 정도로 공격을 합니다.

그들은 절대로 죽지 않을 사람처럼 행동하고 말하고 있고 역사는 항상 자기 편으로 온갖 미사여구와 현학적 표현으로 포장하는 카멜레온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도덕과 윤리는 이젠 학생들의 교과서에만 있는 지나간 세대의 유물이 되었습니다.

‘인생을 모르면서 인생을 시작했다. 사람은 기억하기 때문에 슬프다. 세상은 흘러가도 기억은 남는다. 사람 말고는 이 세상 모든 물질이 시간이 흐르면 자기도 변화한다. 지난 해 봄을 기억하는 나무는 없을 것이다’라는 최인훈 선생의 ‘화두’에서 쓰신 말이 모든 것이 기억되고 또, 죽는다는 것을 모르고 사는 사람에게 주는 메시지 같습니다.

인생 모두는 바흐의 곡명(曲名)처럼 ‘한 발은 무덤을 딛고 서 있다’라고 생각하면 좀 더 정직하고 겸손하고 진지하고 경건하고 따뜻하고 부드럽게 살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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