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메뉴

예닮글로벌 중고등학교

메인페이지로 이동

바로가기메뉴

학교장 칼럼

Home > 소통과나눔 > 학교장칼럼

글읽기

제목
윤봉길 의사의 시계(時計)
이름
유화웅
등록일
2020-02-04

선서문
나는 적성(赤誠 진정한 정성)으로써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여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의 일원(一員)이 되어 중국을 첨략하는 적(敵)의 장교(將校)를 도륙(屠戮 무찔러 죽임)하기로 맹세하나이다.

대한민국 14년 4월 26일 선서인 윤봉길

한인애국단 앞

이 선서문은 매헌 윤봉길(1908-1932)의사께서 1932년 4월 29일 일본왕의 생일인 천장절(天長節) 행사장인 중국 상해 홍구공원(紅口公園)에 가기 전에 태극기를 배경으로 양 손에 수류탄을 들고 가슴에 붙인 선서문의 내용입니다.

1930년 3월 6일 장부출가 생불환(丈夫出家 生不還: 대장부가 집을 떠나면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라는 비장한 글을 남기고 중국으로 망명길에 오릅니다.

윤봉길 의사께서는 상해에 가기 전 청도(靑島)에서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가족사랑 그 위에 민족과 나라사랑의 큰 사랑을 위한 강한 의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보라! 풀은 꽃이 피고 나무는 열매를 맺습니다. 만물의 영장인 사람, 저도 이상(理想)의 꽃이 피고 목적의 열매가 맺기를 자신합니다. 그리고 우리 청년 세대는 부모의 사랑보다도 형제의 사랑보다도, 처자의 사랑보다도 일층 더 강의(强毅 강직하여 굽힘이 없음)한 사랑이 있는 것을 각오하였습니다.’

24세의 청년에게서 얼마나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불일 듯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1931년 상해에 도착하여 임시정부에서 백범 김구 선생을 만나게 됩니다. 김구 선생에게 자기의 뜻을 밝히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바치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마침 1932년 4월 29일 상해 홍구공원에서 일본 왕의 생일 축하와 일본군이 중국과 싸워 이긴 것을 축하하는 전승기념일 행사를 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김구 선생을 비롯 이시영, 이동녕 선생 등 지도자들과 거사계획을 하며 김홍일(金弘一) 장군의 도움을 받아 물통형 폭탄과 도시락 모양의 폭탄을 각각 1개씩 만들게 됩니다.

윤 의사께서는 사전에 홍구공원을 치밀하게 답사하며 만전을 기해 거사를 계획했습니다.

4월 29일아침 백범 김구 선생과 아침식사를 합니다.

식사자리에서 오전 7시경 식사가 거의 끝날 때쯤 윤봉길 의사께서 자기의 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서 김구선생에게 선생님의 시계(時計)와 자기 시계를 바꾸자고 했습니다.

윤봉길 의사는 ‘제 시계는 6원을 주고 산 것인데 선생님 시계는 2원짜리입니다.
저는 한 시간 밖에는 더 소용이 없습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는 윤봉길 의사의 면모가 돋보입니다.

시계를 바꾼 김구 선생은 윤 의사에게
‘뒷날 지하에서 만납시다.’라는 말을 건넸습니다.

조국 대한민국의 독립만을 생각하며 한 몸을 지푸라기처럼 생각하시는 큰 거목(巨木)의 비장함 뒤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따뜻한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짧은 몇 마디에서 큰 강물 줄기처럼 끊이지 않고 큰 바다로 도도하게 흐르는 큰 마음이 두 분의 모습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1932년 4월 29일 중국 대륙의 그 많은 인총(人總)도 해내지 못한 일을 24세의 대한민국의 청년이 혼자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거사를 당당히 해낸 윤봉길 의사의 또 다른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선열들의 덕분에 호의 호식하면서 선열들의 큰 가르침은 어디 가고 지도자라는 이들이 애국심과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당리 당략에 주먹질하고 날카로운 금속성의 언어가 난무하고 타협과 소통이 없는 모습을 보면서 세상에 큰 어른들의 모습이 더욱 새롭게 느껴집니다.
첨부파일
이전글
외솔 최현배 선생 댁 앞마당
/ 유화웅
2020.01.22
다음글
한국의 슈바이처 이일선 목사
/ 유화웅
2020.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