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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외솔 최현배 선생 댁 앞마당
이름
유화웅
등록일
2020-01-22

최현배 선생님의 집 앞마당을 매일 같이 빗자루로 쓸고 가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웃집 사람이 그 청년에게 왜 매일 새벽마다 와서 최 선생 댁의 마당을 쓸고 가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청년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저는 함흥 감옥에서 최현배 선생님과 같은 감방에 있었습니다. 제가 배탈이 나서 크게 고생한 일이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저를 보시고 굶으면 낫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시고는 혼자는 어려울 터이니 같이 굶자고 하시면서 하루 종일 굶으시며 정성껏 돌봐 주셨습니다.

아무도 돌봐주는 사람 없는 감옥에서 자기를 돌보아주신 그 은혜를 어떻게 해서라도 갚고 싶은데 가진 것이 없어 선생님의 집 앞마당이라도 쓸어드리며 은혜를 갚으려고 한다’고 했다고 합니다.

외솔 선생께서는 오직 한글 사랑으로 평생을 사신 분입니다. 진정한 애국자 최현배 선생께서는 ‘한글이 곧 목숨이다’라고 하시면서 한글을 지키시다가 일제 하에서 감옥생활의 고초를 겪으셨습니다.

1920년대 일제(日帝)가 우리 문화 말살정책을 펴자 최현배 선생은 이윤재, 장지영, 김윤경 선생 등과 조선어학회를 만들어 ‘한글’잡지를 펴내고 1929년에는 ‘조선어 사전’을 편찬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전 편찬 작업은 일제의 탄압으로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제정하여 우리말의 질서를 잡았습니다.

1934년부터 일제는 모든 관공서에서 일본어를 전용하게 했고 1940년부터는 학교에서 우리말을 전혀 사용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한편 1941년에는 한국인과 일본인은 본래 같은 민족이라는 내선일체(內鮮一體)론을 내세워 한글 말살정책과 창씨개명(創氏改名)을 시도했습니다.

1942년 함경남도 함흥 영생고등여학교 여학생 박영옥이 기차 안에서 일본어가 아닌 우리말로 대화를 하는 것을 본 친일파 한국인 순사 안정묵(安正 일본명 야스다)가 박영옥을 체포하여 왜 우리말을 사용했고 누가 가르쳤느냐고 취조하고 고문 끝에 조선어학회 소속 한글학자 정태진 선생한테서 민족정신을 수호하여야 한다는 교육을 받았다고 진술하였다고 합니다.

9월 5일 정태진 선생을 연행하여 취조하면서 정태진 선생으로부터 조선어학회가 민족주의 단체로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강제자백을 받아냈습니다.

이로 인해 조선 최고의 지식인들을 모두 검거하게 되어 최현배 선생을 비롯하여 11분이 구속되었습니다.

1943.4.1까지 검거된 분이 33명이었습니다.

이와 관련되어 혹독한 취조를 받은 분도 48명이었습니다. 또 사전 편찬을 위해 직접 가담했거나 재정적 보조를 한 사람 33명도 모두 치안 유지법의 내란죄로 처벌을 받았습니다.

이로 인해 최현배, 이희승, 이윤재, 이극로, 정인승, 이우식, 정태진, 김도연, 이중화, 김법린, 이인, 한징, 정열모, 장지영, 김양수, 장현식 선생 등 16명은 기소되었고 이윤재, 한 진 선생은 옥사하였습니다.

울산에서 태어나시어 경성고등보통학교, 일본 히로시마 고등사범학교, 교토대학을 졸업하고 오직 한글 지킴이에 일생을 바친 외솔 선생께서 옥고를 치르시면서 큰 어른의 마음, 따뜻한 마음으로 감방에서 사랑을 베푸신 모습은 요즈음처럼 나이는 많고 배운 것 많고 큰 자리, 높은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애국심은 안보이고 탐욕으로 가득 차 자기 배만 불리고 독야청청한 것처럼 자신도 속이고 남들도 속이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 세상에 선생님의 아호(雅號)처럼 큰 봉우리 위에 당당한 낙낙장송 외솔로 서있는 큰 어른을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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