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메뉴

예닮글로벌 중고등학교

메인페이지로 이동

바로가기메뉴

학교장 칼럼

Home > 소통과나눔 > 학교장칼럼

글읽기

제목
이긴 자는 원수가 없어야
이름
유화웅
등록일
2019-05-31

아놀드 토인비는 인류의 역사는 ‘도전(挑戰)’과 응전(應戰)이라고 했습니다. 곧 전쟁의 역사라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전쟁은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 부족과 부족 간에 이루어 지는 것을 비롯하여 정치 체제 하에서 정당(政黨)과 정당, 개인과 개인 등 더 나열하지 못할 정도의 크고 작은 전쟁이 그칠 날이 없습니다.

이 전쟁은 승자와 패자로 결정됩니다.

이 때 승자는 모든 것을 얻고 누리고 지배합니다.

승자에 따라 패자의 운명이 좌우됩니다.

승자에게 생사여탈(生死與奪)의 권한이 있으므로 승자의 그릇 크기에 영웅도 되고, 폭군도 되고 대인(大人)도 되고, 소인(小人)도 됩니다.

B.C 60 크라수스, 카이사르와 함께 삼두(三頭)정치 지도자의 한 사람인 ‘폼페이우스’가 로마제국의 최고 실력자가 되자 이를 견제하던 카이사르가 B.C 49년 갈리아(지금의 프랑스)에서 루비콘 강을 건너며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명언을 남기고 로마로 진군하여 이듬해 폼페이우스와 아테네 북쪽 파르사로스 평원에서 일전(一戰)을 겨루어 카이사르가 승리했습니다.

폼페이우스는 로마 권력을 쥐고 각종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던 명장이었지만 카이사르와의 전투에서 패배함으로써 모든 것을 잃게 되었습니다.

이 때 카이사르는 적장 폼페이우스에게로 가는 갖가지 편지가 들어있는 문갑(文匣)을 압수했습니다. 이것을 보내는 사람이 적을 이롭게 하기 위해 적에게 붙을 사람인가 어느 당파에도 속하지 않았던 사람들인가 등, 적진과 내통했을 많은 사람들을 알 수 있는 편지가 담긴 상자를 열어 보지 않고 불태웠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의 잘잘못을 묻지 않고 용서를 했다고 세네카의 인생론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카이사르는 자기 편은 물론 적의 군대와 사람들까지도 내 편으로 만드는 품은 큰 그릇의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에 적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후 적을 다스리지 못하는 지도자도 있습니다. 고대 스파르타의 교육은 강한 것에 가치를 두고 적과의 싸움에서는 승리하는 법만 가르쳤습니다. 따라서 어떤 종류의 전투에서도 스파르타군은 승리를 거듭했습니다.

그러나 그 강한 스파르타가 강한 것만 자랑하며 패배한 사람들에게는 무자비 했던 것 외에는 더 이상 다른 소중한 가치는 완전히 무시했습니다.

왕에게는 백성이 필요하고 그들을 지배와 통치의 대상으로만 인식이 되었던 것입니다.

백성들은 지배당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그 왕을 왕으로 대하지 않고 왕위에서 끌어내리는 혁명의 전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강했던 스파르타도 레욱트라 전투에서 패하고 헬로프들의 반란으로 쇠망하면서 로마의 지배를 받고 말았습니다.

승자는 처음에는 사자의 모습으로 보일지라도 승리한 후에는 승자, 패자 구분하지 않고 평안을 누리게 양(羊)의 모습으로 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패자는 항상 승자의 약점과 틈새를 엿보며 공격을 준비하려 자기들의 힘을 기르게 됩니다.

승자가 자칫 범하기 쉬운 것은 자신들을 법(法) 위에 올려놓고 정의를 독점하며 패자를 노예로 만들려고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기도 합니다.

정의는 공유하는 것이지 독점할 수도 없는 지고(至高)의 가치입니다.

해 아래 어느 것도 누구도 영원한 것이 없듯이 영원한 승자도 없고, 영원한 패자도 없습니다.

패자는 원한과 복수심, 억울함을 지니고 있으므로 승자는 패자를 품고 헤아리고 일으켜 세워서 내 편으로 만드는 관용이 있어야 합니다.

패자를 분노케 해서는 안됩니다. 이긴 자가 진 자와 원수를 맺게 되면 보복의 악순환만 반복될 뿐입니다. 그리고 가장 두려운 것은 자라나는 우리의 자녀들이 보고 배우게 된다는 것입니다.
첨부파일
이전글
레전드 대통령
/ 유화웅
2019.05.31
다음글
그게 왜 궁금하세요
/ 유화웅
2019.06.19